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39

구름은 그대로인데, 겐팅하일랜드는 달라졌다 말레이시아, 해발 약 1,800미터의 산 위에 자리한 도시를 처음 마주하면, 그것이 의도된 공간이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됩니다. 자연이 먼저 있었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의지를 갖고 자연을 개조해 만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의 더운 저지대를 벗어나 구름 가까이 올라가면 전혀 다른 기온과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겐팅하일랜드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곳은 거대한 호텔 단지와 쇼핑몰, 테마파크, 카지노가 뒤엉킨 복합 리조트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이곳은 단출하고 조용한 산악 휴양지였습니다. 이 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말레이시아 현대 개발사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고원 위에 세워진 욕망의 도시겐팅하일랜드의 시작은 1960년대 초, 사업가 림고통의 구상.. 2026. 3. 6.
축소된 네덜란드, 그러나 더 선명한 도시 마두로담 네덜란드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케일 감각이 흐트러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운하와 자전거 도로, 벽돌 건물과 유리로 된 현대 건축이 마치 정교한 모형처럼 정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상을 실제 ‘모형’으로 구현해 놓은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마두로담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테마파크가 아니라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어떤 역사적 선택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축소된 공간 안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시 해설서에 가깝습니다.작은 나라가 ‘축소 도시’를 만든 이유마두로담은 1952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네덜란드 청년 조지 마두로를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습니다. 전쟁 이후 재건의 상징이 필요했던 시기였습니다. 국토는 작지만 해양 무역과 수리 기술로 세계와 연결되어 .. 2026. 3. 5.
호수에서 강으로, 진자에서 시작되는 나일 아프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 나일강은 지도 위에서 보면 하나의 선처럼 단순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점에 서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간다 동부의 도시 진자, 빅토리아 호수에서 물이 흘러나와 하나의 강이 되는 지점.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의 ‘출발’로 불리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면, 장엄한 폭포나 극적인 절벽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잔잔한 호수와 완만한 물길, 그리고 일상의 풍경이 이어집니다. 거대한 강의 시작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호수에서 강으로, 지리의 전환점진자는 우간다 동부에 자리한 도시로, 빅토리아 호수 북단에 위치합니다. 이곳에서 호수의 물은 하나의 수로로 모이며 나일강의 흐름을 시작합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빅토리아 호수는 이미 광대한 수계를 이루고 .. 2026. 3. 4.
부라노, 40년의 시간 위에 덧칠된 색 부라노를 떠올리면 먼저 색이 생각납니다. 물길을 따라 늘어선 집들은 파랑, 노랑, 분홍, 초록으로 선명하게 칠해져 있고, 그 색들은 물 위에 한 번 더 번져 또 다른 마을을 만들어 냅니다. 물 위에 세워진 작은 섬이 이렇게까지 선명한 색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지도 위에서 볼 때는 쉽게 상상되지 않습니다. 베네치아 석호 (潟湖, Lagoon) 북쪽에 자리한 이 섬은 겉으로는 동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오랜 생업과 생활의 층위가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40여 년 전, 필자가 베니스를 방문하던 길에 무라노를 거쳐 이곳에 들렀을 때의 기억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 당시 부라노는 직물공예, 특히 레이스 가게 몇 곳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산업이나 눈에 띄는 볼거리가 많지 않았던 조용한 어촌에.. 2026. 3. 3.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예수 세례의 역사적 현장 요르단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강이라기보다 물줄기라 부르는 편이 어울릴 만큼 잔잔한 흐름이 나타납니다. 모래빛 평야와 갈대 숲, 낮게 깔린 하늘 아래에서 이곳은 스스로를 크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조용한 강가가 지닌 이름은 오래전부터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았습니다. 바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오늘날 요르단의 알마그타스라 불리는 장소입니다. 많은 이들은 이곳을 한 장의 성화처럼 상상합니다. 맑은 강물, 빛이 쏟아지는 하늘, 경건하게 서 있는 인물들. 그러나 실제의 베다니는 생각보다 소박하고, 오히려 그 담백함이 이 장소의 의미를 더 또렷하게 만듭니다. 이곳은 웅장함이 아니라 ‘전환’의 공간이었습니다. 물 위에서 시작된 한 장면이 이후의 역사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강을 건너는.. 2026. 3. 3.
눈 속에서 이어진 시간, 츠루노유 온천의 역사와 오늘 아키타 깊은 산속에 자리한 츠루노유 온천은 단순한 온천 숙소라기보다, 시간이 겹겹이 내려앉은 한 장의 풍경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답게 겨울이면 온 세상이 흰빛으로 잠기고, 초가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온천 김은 마치 오래전 에도 시대의 한 장면을 지금으로 끌어당긴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이곳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숨 쉬는 생활의 공간입니다. 필자가 2010년에 처음 찾았을 때의 기억과 오늘날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분명 미묘한 분위기의 변화가 느껴집니다.산속에 자리 잡은 이유 – 은광과 번(藩)의 보호츠루노유 온천은 아키타현 센보쿠시에 속한 뉴토(乳頭) 온천향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기원은 에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특히 아키.. 2026.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