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말라야의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선 둘리켈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체류가 아니라, 익숙했던 삶의 기준을 천천히 내려놓는 과정이었습니다.
2012년 봄, 카트만두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이곳 카트만두 대학교에 3개월간 머물며 저는 관광으로는 결코 마주할 수 없었던 네팔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방문이었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결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세계와 45분 어긋난 시간, 그리고 삶의 리듬
네팔의 시간은 세계와 정확히 맞지 않습니다. UTC+5시간 45분이라는 독특한 시간 체계는 처음에는 낯설고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줍니다. 45분 어긋난 그 시간처럼, 그곳의 삶도 우리의 기준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어긋남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서 체감되는 삶의 본질이었습니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근무일, 그리고 단 하루뿐인 토요일의 휴식은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다르게 느끼게 했습니다. 모든 것이 조금 느리고, 조금 느슨하지만, 그 안에는 나름대로 묘한 균형과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숨 쉬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는 풍경
카트만두 대학교의 캠퍼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였습니다. 아침이면 희미한 안개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고, 멀리 히말라야 능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녁이 되면 붉은 빛이 산을 감싸며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조깅을 하고, 틈이 날 때마다 산책을 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자연과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었습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생각은 가벼워졌고, 마음은 점점 더 편안해졌습니다.
정전 속에서 배우는 삶의 본질
둘리켈에서의 삶은 아름다움만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전기 공급은 제한적이었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정전은 일상이었습니다.
전기가 끊기면 냉장고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모든 음식을 최대한 얼려두어야 했습니다. 정전이 길어질 경우에는 차가운 물로 샤워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때로는 물 공급 자체가 끊기기도 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종종 촛불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해 식사를 하는 경험은 처음에는 불편함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그 시간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역시 불안정했고, 카트만두까지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온도가 삶을 채우는 곳
이곳에서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자연도, 풍경도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대학교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은 놀라울 만큼 순박하고 따뜻했습니다. 작은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자전거를 타고 직접 배달해주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거래를 넘어, 인간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이들의 친절은 점점 마음을 열게 만들었고, 어느 순간에는 그들의 일상이 제 삶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관광지에서 스쳐 지나가는 만남과는 전혀 다른, 깊고 조용한 연결이 그곳에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네팔의 식탁, 그리고 달밧이라는 세계
네팔의 음식 문화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달밧’이 있으며, 이 외에도 모모, 채소 커리, 다양한 렌틸 요리들이 일상적으로 식탁에 오릅니다.
그중에서도 달밧은 네팔 사람들의 삶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밥과 렌틸콩 수프, 채소 반찬이 함께 나오는 이 식사는 단순하지만 놀라울 만큼 균형 잡힌 한 끼입니다.
저 역시 점점 이 음식에 익숙해졌고, 결국에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방식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교수 식당에서는 큰 페트병에 담긴 물을 식탁 위에 두고 돌아가며 마셨습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방식’으로 느껴졌습니다.
단 하루의 휴일, 그리고 느린 이동
토요일은 유일한 휴일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카트만두로 가는 버스를 단 한 번 운행했습니다.
그 버스를 놓치면 선택지는 택시뿐이었습니다. 몇 차례 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이용했던 기억은 당시에는 불편함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재미있는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 속에서 삶은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흘러갔습니다.
낭만과 현실, 그 사이에서
둘리켈에서의 3개월은 낭만과 현실이 공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불편함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삶의 본질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주었습니다. 자연은 압도적으로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따뜻했으며,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습니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카트만두 대학교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번창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45분 어긋난 시간 속으로 돌아가 그 느린 숨결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