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중부의 국가 카메룬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국가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유럽 식민 경험이 겹겹이 쌓여 있는 복합적인 역사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독일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던 카메룬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와 영국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고, 이후 독립 과정에서도 이 이중 구조의 흔적은 그대로 남게 됩니다. 오늘날 수도 야운데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프랑스어권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행정·교육·일상 언어 전반에 걸쳐 프랑스식 체계가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식민의 흔적 위에 형성된 야운데의 식문화
야운데의 식탁은 단순히 먹는 행위를 넘어 이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공간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카사바를 중심으로 한 전통 식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카사바를 발효시켜 만든 바똥 드 마뇩(Bâton de manioc)은 길쭉한 형태로 찜처럼 익혀 먹는 주식이며, 포이(Foufou)는 쫀득한 식감으로 다양한 소스와 곁들여 먹습니다.
은돌레(Ndolé)는 쌉싸름한 잎채소에 땅콩과 고기를 넣어 만든 대표적인 가정식으로, 이 지역 사람들의 일상적인 식사를 상징하는 음식입니다. 여기에 플랜틴(Plantain)을 튀기거나 구워 먹는 방식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공유되는 식문화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거리에서는 ‘생깐(50)’이라 불리는 꼬치구이가 흔하게 보이는데, 이름 그대로 50세파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간단히 배를 채울 수 있는 서민 음식입니다. 이처럼 야운데의 음식은 토착적인 재료와 조리법 위에 프랑스식 조리 방식,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 전반의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형성된 결과물입니다.
단조로운 식사의 반복 속에서 발견한 ‘익숙함’
10여 년 전, 야운데에 약 6개월간 체류하며 생활하던 시절, 저는 거의 모든 식사를 현지 음식으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국적인 맛이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식사의 선택지가 제한된다는 점이 점차 체감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을 넘어 정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한 중식당의 메뉴판에서 ‘짜장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순간의 반가움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익숙한 언어, 익숙한 기억, 그리고 잠시나마 고향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었습니다.
짜장면이라는 음식의 이동과 변형
짜장면은 본래 중국 산둥 지역의 자장미엔(炸酱面)에서 유래한 음식입니다. 이후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한국식으로 완전히 재해석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짜장면은 사실상 ‘한국 음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중국 본토에서는 산둥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우리가 익숙한 형태의 짜장면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음식은 이동하면서 변형됩니다. 새로운 지역의 재료, 기후, 입맛, 조리 방식과 결합하면서 원형과는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와 만나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창조 과정입니다.
기대와 현실 사이, 그리고 당혹스러움
하지만 실제로 주문해 나온 짜장면은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색깔과 외형은 분명 익숙했지만, 한 입 먹는 순간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맛의 균형, 소스의 깊이, 면의 식감 모두가 제가 알고 있던 짜장면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날이 단순한 개인 식사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현지인 다섯 명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고, 짜장면은 ‘특별한 사이드 메뉴’로 주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저조차도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이었고, 현지인들 역시 몇 입을 시도하다가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순간의 어색한 공기와 설명하기 어려운 당혹감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 음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경험은 한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과연 이 짜장면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메뉴였을까요?
현지인의 입맛에도, 한국인의 기대에도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이 음식은 어쩌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단순히 “중식당이라면 있어야 할 것 같은 메뉴”라는 상징적 의미로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음식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그 언어가 특정한 맥락 없이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때, 때로는 아무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번역’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낯선 도시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 음식의 본질
야운데에서의 그 짜장면 한 그릇은 단순한 실패한 식사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던 ‘음식의 이동과 변형’이라는 개념이, 실제 경험 속에서 얼마나 낯설고 생생하게 다가오는지를 몸으로 확인하게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맛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다가왔을 때, 저는 비로소 음식이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시간과 환경,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익숙하다고 믿는 음식조차 특정한 시간과 장소, 문화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