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카르타헤나, 성벽 안에 남겨진 시간의 결

by Eugene Global Footprints 2026. 2. 26.

성벽의 도시 모습

 

카리브해의 습한 공기는 이 도시의 골목을 천천히 감쌉니다. 바다는 늘 열려 있지만, 도시는 돌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카르타헤나는 화려합니다. 강렬한 색채의 외벽, 발코니에 쏟아지는 꽃, 마차가 지나가는 자갈길. 그러나 그 표면 아래에는 오래된 긴장과 생존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이 도시는 낭만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다를 향해 열린 항구이면서도, 동시에 침입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닫아야 했던 도시입니다. 그 모순이 지금의 카르타헤나를 만들었습니다.

왜 이곳에 도시가 세워졌는가

16세기, 스페인은 남미 대륙의 부를 유럽으로 실어 나를 안전한 항구가 필요했습니다. 카르타헤나는 천연의 만(灣)을 가진 전략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잔잔한 내해와 외해를 구분하는 지형은 배를 숨기기에 적합했고, 내륙과 연결되는 교통로 또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가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위협이 따랐습니다. 해적과 경쟁 제국의 공격은 반복되었고, 도시는 점점 더 단단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성벽이 세워지고, 언덕 위에는 산 펠리페 데 바라하스 성이 구축되었습니다. 이 요새는 단순한 군사 시설이 아니라, 도시의 공포와 결의를 동시에 상징합니다.

 

카르타헤나는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었지만, 동시에 그 바다 때문에 자신을 방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열린 폐쇄성’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돌담의 두께에서 그 시대의 긴장이 전해집니다.

성벽 안과 밖,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

카르타헤나는 크게 성벽 안의 구시가지, 그리고 그 바깥의 확장된 도시로 나뉩니다.

 

성벽 안은 식민지 권력의 중심이었습니다. 성당과 관청, 광장이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격자 구조는 통치의 효율성을 보여줍니다. 관광객의 눈에는 이 공간이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보입니다. 모든 건물이 정돈되어 있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이어지며, 음악이 광장을 채웁니다.

 

그러나 성벽 밖으로 나가면 다른 리듬이 펼쳐집니다. 헤츠마니 지역은 과거 항구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공간이었고, 오늘날에는 벽화와 지역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장소로 변모했습니다. 예술가의 그림과 주민의 일상이 한 골목 안에서 겹쳐집니다. 현대적 고층 건물이 늘어선 해안 지구는 또 다른 카르타헤나를 보여줍니다.

 

이 분화는 단순한 도시 확장이 아니라, 역사적 계층과 경제 구조가 남긴 흔적입니다. 관광객은 주로 성벽 안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현지인의 삶은 그 경계 너머에서 이어집니다.

하루의 리듬이 공간을 바꿉니다

이 도시는 기후와 함께 움직입니다.

 

아침, 햇살이 아직 부드러울 때 성벽 위를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민들입니다. 운동을 하거나 바다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관광객이 몰려오기 전, 도시는 잠시 일상의 얼굴을 드러냅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 공기는 무거워지고, 그림자가 중요해집니다. 두꺼운 벽과 높은 천장은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더위를 견디기 위한 구조였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건축은 지금도 기후에 대한 해답으로 기능합니다.

 

해가 기울면 광장에 사람들이 모입니다.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음악이 흐르며, 성벽 위에는 연인과 가족이 앉아 바다를 바라봅니다. 관광객에게 이 시간은 낭만이지만, 현지인에게는 더위가 가신 뒤 비로소 찾아오는 휴식의 시간입니다. 카르타헤나의 밤은 낮보다 더 사회적입니다. 대화와 음악, 거리의 소리가 도시를 다시 채웁니다.

바다와 요새, 그리고 걷는 감각

산 펠리페 요새로 오르는 길은 짧지만 가파릅니다. 이 언덕을 오르면 도시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성벽 안의 낮은 지붕들, 바다를 향해 뻗은 방파제, 멀리 현대식 건물들까지. 이 장면은 단순한 전망이 아니라 시간의 단면입니다.

 

자연은 이 도시에서 배경이 아니라 조건이었습니다. 카리브의 강한 햇빛, 습도, 바람은 건축과 생활 방식을 결정지었습니다. 그래서 카르타헤나에서의 걷기는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기후와 역사 속을 통과하는 경험이 됩니다. 돌길의 울림, 바다 냄새, 벽에 스며든 습기는 이 도시가 오랫동안 항구였음을 몸으로 느끼게 합니다.

마치며: 표면과 내면 사이에서

관광객은 카르타헤나를 ‘아름다운 식민지 도시’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현지인에게 이곳은 노동과 기억, 그리고 변화의 공간입니다. 관광 산업은 도시 경제를 지탱하지만, 동시에 임대료 상승과 공간의 재편을 가져왔습니다. 오래된 주택이 호텔로 바뀌고, 골목의 성격도 서서히 달라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타헤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도시입니다. 성벽은 과거의 방어선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모여 앉는 공공의 벤치가 되었습니다. 요새는 더 이상 전쟁을 준비하지 않지만, 도시의 형성을 설명하는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카르타헤나는 과거를 소비하는 도시이면서도,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그 두 층위가 겹쳐질 때, 이 도시는 비로소 입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지켜온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위에서 여전히 이어지는 삶. 카르타헤나는 그렇게, 성벽 안에서 오늘도 바다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