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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읽는 여행

유럽 끝자락에서 본 제국주의의 그림자: 항해 시대 유적과 현대의 대화

by Eugene Global Footprints 202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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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 시대의 범선
유럽 끝자락에서 본 제국주의의 그림자: 항해 시대 유적과 현대의 대화

 

유럽 대륙의 서쪽 끝, 대서양을 향해 트여 있는 포르투갈 리스본의 벨렝(Belém) 지구를 걷다 보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해양 박물관처럼 느껴집니다. 벨렝탑, 제로니무스 수도원, 발견기념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득한 ‘대항해 시대’의 영광을 증언하는 유적들이 집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리스본 관광 당국 역시 이곳을 포르투갈 해양 진출의 찬란한 전성기 공간으로 적극 소개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오래된 유적들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은 과거의 ‘위대한 항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바다를 건넌 탐험과 무역의 빛나는 이면에는 식민지 지배, 대서양 노예무역, 자원 수탈이라는 아픈 그림자가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리스본의 유적들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현대 사회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역사적 공간'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럽의 끝에서 대서양으로 뻗어나간 제국의 발자취

15세기 이후 포르투갈은 대서양 항로를 적극 개척하며 아프리카, 인도양,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거대한 해상 교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조선술과 지도 제작, 천문 항해술의 비약적 발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적 차원의 연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 교역의 중심지, 리스본: 전 세계의 향신료와 금, 비단이 몰려들던 리스본은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 권력의 건축적 상징: 벨렝 지구의 웅장한 건축물들은 왕권과 해양 진출이 결합된 결정체입니다. 특히 벨렝탑 외벽에 새겨진 마누엘 1세의 문장과 천구의 스투코 장식은 당대 포르투갈이 누렸던 해상 패권을 명확히 증언합니다.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증언하는 빛과 그림자

테주강 하구에 고즈넉하게 서 있는 벨렝탑은 본래 리스본 항구로 진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해상 요새이자, 바다로 떠나는 항해사들을 배웅하는 방파제였습니다. 오늘날엔 리스본을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서사: 인근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496년 마누엘 1세가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성공을 기념하여 건립을 명한 곳입니다. 이곳에는 바스쿠 다 가마와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석묘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 두 건축물은 마누엘 양식(Manueline style)이라는 독창적인 해양 모티브 건축미를 인정받아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발견'이라는 문명사적 단어 뒤에 가려진 타자들

유럽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대항해 시대는 '신대륙의 발견'과 '세계 무역의 확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땅에서 수천 년 동안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던 원주민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역사는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 노예무역과 수탈의 역사: 유럽 세력의 진출은 원주민 문명의 파괴, 강제 노동, 자원 수탈, 그리고 비인간적인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이어졌습니다. 포르투갈은 대서양 아프리카 노예 수송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 질문의 전환: 영웅적인 항해자의 동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누가 새 대륙을 발견했는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넘어, "그 과정에서 누구의 삶과 터전이 파괴되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관광지가 된 제국의 기억과 현대적 소통

오늘날 벨렝 지구는 전 세계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관광 명소입니다. 오래된 고딕·마누엘 풍의 수녀원과 현대적인 문화센터(CCB), 박물관들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집니다.

  • 기억의 방식에 대한 고민: 이곳은 과거의 제국을 무조건 맹목적으로 찬양하거나, 반대로 모든 역사적 유산을 단죄·부정하는 극단적 시각을 넘어서는 공간입니다.

  • 서사의 확장: 문화유산은 돌덩이 그 자체보다 '그곳에 어떤 서사와 설명판을 부여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탐험가와 국왕의 이름뿐만 아니라 식민지 주민과 억압받았던 노예들의 목소리까지 안내문에 수용할 때, 유적은 비로소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입체적 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포르투갈 사회에서 현재진행형인 식민주의 논쟁

이러한 역사적 성찰은 과거의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현지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2024년 배상 논쟁: 2024년, 포르투갈의 마르셀루 헤벨루 드 소자 대통령이 과거 노예제와 식민지 시절 발생한 범죄에 대해 포르투갈 국가 차원의 책임 인정과 배상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거대한 정치적 논쟁이 발발했습니다.

  • 역사의 책임에 대한 질문: 비록 포르투갈 정부 차원에서 즉각적인 금전 배상 프로그램을 추진하지는 않기로 정리되었으나, 이 논쟁은 '과거 제국주의의 유산을 현대 국가가 어떻게 책임지고 기념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단순한 돈의 문제를 넘어 역사 교육 개정, 사과와 공식 기록 정립, 구 식민지 국가들과의 상생 관계 구축 등 다각도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균형 잡힌 인문학적 여행을 위한 시선

대항해 시대를 이해할 때 '영웅적 탐험과 문명의 발전'이라는 극단적 긍정론이나, '일방적 침략과 수탈'이라는 극단적 부정론 중 하나에만 갇히는 것은 위험합니다.

  • 시대적 맥락과 현재적 영향의 공존: 동시대의 세계 교역 네트워크 형성 및 문화 교류라는 측면을 이해함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수반된 국가적 폭력과 노예제의 비극을 동시에 직시해야 합니다.

  • 과거와 현대의 균형: 현대의 도덕적 기준만을 잣대로 과거를 일방적으로 단죄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과거의 명백한 피학적 역사를 낭만화하여 외면하는 것 역시 피해야 할 태도입니다.

마치며: 영광의 석조물 뒤에 숨겨진 질문을 읽다

리스본 벨렝탑 아래 서서 대서양을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햇빛에 부서지는 아름다운 물결과 고풍스러운 건축미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 더 깊게 두면, 그 감상적인 풍경 뒤로 세계의 팽창과 연결, 부와 권력, 그리고 식민지 피해자들의 눈물이 겹겹이 스며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역사 유적을 여행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시대가 누구에게는 찬란한 영광이었고, 누구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였는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해 보는 과정입니다. 유럽의 끝자락 리스본에서 시작된 그 옛날의 항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를 어떻게 올바르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깊은 질문을 건네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리스본 벨렝(Belém) 지구는 왜 대항해시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가요?

A. 벨렝은 바스쿠 다 가마를 비롯한 포르투갈 항해사들이 실제 대서양으로 출항했던 전초기지입니다. 이곳에 남아있는 벨렝탑, 제로니무스 수도원, 발견기념비 등은 당대 포르투갈 해양 제국의 부와 국력을 상징적으로 집약해 보여줍니다.

Q2. 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건축적·역사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A. 두 유적은 16세기 포르투갈 전성기 양식인 마누엘 양식(Manueline style)의 정수로, 밧줄, 조개, 천구의 등 해양 모티브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Q3. '대항해 시대'를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 시각과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유럽 입장의 항로 개척과 지리적 확장은, 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 현지 주민들에게 식민지 지배, 자원 수탈, 대서양 노예무역이라는 비극과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시각을 모두 포괄해야 역사적 사실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Q4. 포르투갈 현지에서는 식민지 역사 책임에 대해 어떤 논의가 있나요?

A. 2024년 대통령의 과거 식민지 및 노예제 범죄에 대한 책임과 배상 언급을 계기로 사회적·정치적 논쟁이 활발해졌습니다.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 역사 교과서 서술 방식, 구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 설정 등에 대해 다각적인 담론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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