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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사나에서 보낸 1년, 올드 사나의 역사와 오늘의 정치 상황

by Eugene Global Footprints 2026.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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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올드 사나 시내 전경예멘 시장 풍경
예멘 올드사나 시내 와 시장 풍경

 

 

2014년 1월부터 약 1년 동안, 저는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했던 기억들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이 아니라 한 도시의 시간과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통 도시 올드 사나의 역사와 공간의 특징,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진 정치적 변화까지, 제가 머물던 시간의 결을 따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멘의 수도에 자리한 올드 사나(Old Sana'a)는 중동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약 2,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도시는 아라비아 반도의 교역로와 고산 도시 문화가 결합되면서 독특한 도시 풍경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여러 층으로 높게 올라간 흙벽돌 탑 주택과 정교한 석고 장식은 사나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올드 사나는 역사, 건축, 종교, 서로 얽혀 있는 복합적인 공간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문화적 가치를 지니지만, 동시에 오랜 갈등 속에서 흔들려온 도시 이기도 핮니다.

고대 교역 도시로 시작된 사나의 역사

올드 사나는사냐는 고대 사바 왕국(Sabaean Kingdom) 시기부터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사바 왕국은 고대 아라비아 남부에서 번성했던 문명으로, 향료와 유향(Frankincense)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습니다. 사냐는 바로 이 향료 무역로의 주요 거점 도시였습니다.

 

도시는 해발 약 2,300m의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산 환경 덕분에 아라비아 반도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유지했고, 이는 사람들이 오래 정착해 도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7세기 이슬람이 확산되면서 사나는 이슬람 문화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여러 모스크와 종교 학교가 세워졌으며, 이 시기에 도시 구조와 건축 양식의 기초가 형성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독특한 탑 주택 건축

올드 사나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늘을 향해 쌓아 올린 듯한 탑 형태의 주택들이었습니다. 높이 5층에서 많게는 9층까지 이어지는 이 건물들은 대부분 흙벽돌로 만들어졌고, 외벽에는 하얀 석고 장식이 더해져 있습니다.

 

이 장식은 단순한 미적 요소가 아니라 강한 햇빛을 반사하고 건물을 보호하는 기능까지 함께 담고 있습니다.

 

집 내부 구조 또한 흥미롭습니다.

  • 아래층: 창고나 가축 공간
  • 중간층: 가족 생활 공간
  • 상층: 손님 접대 공간
  • 최상층: 마프라즈(mafraj)라고 불리는 응접실

마프라즈는 사나의 사회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각성 효과를 내는 식물의 일종인 카트(qat)라는 잎을 씹으며 시간을 보내는 전통적인 생활 문화가 이어집니다.

 

좁은 골목길과 서로 맞닿은 높은 집들 덕분에 도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건축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머물던 당시에도 이러한 생활 풍경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평온함의 이면에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긴장감이 공기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리듬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도시 곳곳에서는 때때로 갑작스러운 소음이 밤의 정적을 깨곤 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

 

1986년 올드 사냐는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독특한 건축 양식: 수천 채에 이르는 탑 주택 건축
  • 전통 도시 구조 유지: 시장(수크), 모스크, 주거 지역이 중세 도시 형태를 유지
  • 생활 문화의 지속성: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도시

이곳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입니다. 약 6,000채 이상의 전통 가옥이 남아 있으며, 일부는 400년 이상의 시간을 견뎌온 건물입니다.

올드 사나의 주요 볼거리

1. 바브 알 예멘 (Bab al-Yemen)

바브 알 예멘은 올드 사나의 대표적인 도시 성문입니다.

 

이 문을 지나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시장과 골목이 펼쳐집니다. 향신료, 전통 의상, 은 장신구 등을 파는 상점들이 이어지며 예멘의 전통 생활 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2. 전통 타워 하우스 거리

올드 사나의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바로 타워 하우스입니다.

 

수백 년 전에 지어진 이 집들은 흙벽돌로 만들어졌지만 매우 견고하며, 가족 공동체 중심의 생활 구조를 반영합니다. 아래층은 창고나 가게, 위층은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해 질 무렵 골목 사이로 햇빛이 비치면 붉은 흙벽돌 건물과 흰 장식이 대비를 이루며 독특한 도시 풍경을 만듭니다.

3. 전통 시장 (수크)

올드 사나에는 중세부터 이어져 온 수크(souq, 전통 시장)가 있습니다.

 

이 시장에서는 커피, 향신료, 꿀, 은 세공품, 전통 단검인 잼비야 등을 판매합니다. 예멘은 커피 문화의 발상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이곳 시장에서도 다양한 커피와 향신료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일상과 긴장이 공존하던 시간

제가 머물던 시기의 사나는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이 유지되는 듯 보였지만, 그 속에는 늘 조심스러운 움직임이 필요했습니다.

 

외출은 언제나 계획적으로 이루어졌고, 낯선 도시를 혼자 걷는 일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무장 경호원의 보호 아래 이동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도시의 거리 또한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의 아이들, 시장의 상인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마프라즈에 모여 차를 나누던 사람들의 모습은 여전히 따뜻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예멘 내전과 도시의 위기

그러나 제가 사나를 떠나오기 얼마 전부터 예멘은 심각한 내전에 빠졌습니다. 이 갈등의 중심에는 후티(Houthi) 반군, 예멘 정부,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연합군이 있습니다.

  • 2014년: 후티 반군의 사나 장악
  • 2015년: 사우디 주도의 군사 개입 
  • 이후: 장기 내전 지속

이 과정에서 올드 사나 역시 피해를 입었습니다. 거의 매일 반복되는 공습과 포격으로 많은 역사 건물이 파괴되었고, 도시의 전통 건축도 심각한 위험에 처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여러 차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경고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떠나오던 순간의 기억

1년의 시간을 마치고 사나를 떠나던 날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도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떠나는 길은 예상보다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 속에서 이동이 이루어졌고, 그날의 공기는 묘하게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항공편을 통해 어렵게 도시를 떠날 수 있었고, 그 순간 창밖으로 보이던 사나의 풍경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의 감정은 단순한 출국이 아니라, 한 시대와 한 공간을 뒤로하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현재의 사나, 그리고 남겨진 질문

현재 사나는 후티 반군이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도시의 일상과 행정, 경제 활동 역시 이 구조 안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일상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불안정한 균형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멘의 정치 상황은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지역 패권과 국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북부를 중심으로 한 후티 세력, 국제적으로 인정된 정부, 남부 분리주의 세력,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외부 세력까지 다양한 이해관계가 교차하면서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대규모 전투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이라기보다 일시적인 정지 상태에 가까운 측면이 있습니다. 긴장과 휴전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도시의 시간은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도시는 과연 다시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이 공간의 기억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사나는 분명 사람들의 삶이 살아 숨 쉬던 도시였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단순한 정치적 관심을 넘어, 한 도시의 시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조용한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문화유산과 현실 사이에 놓인 도시

올드 사나는 아라비아 고산 도시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건축 전통과 생활 방식이 아직도 도시 속에 살아 있습니다. 저에게도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리듬이 강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전쟁, 정치 갈등, 경제 붕괴라는 현실 속에 놓여 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문화유산 보존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골목 사이로 이어지는 탑 주택들과 오래된 시장은 여전히 사나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풍경은 단순한 건축 유산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낸 도시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용히 평화를 기다리는 사나의 골목

전쟁이 길어졌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평화를 향한 작은 움직임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도시의 골목이 다시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채워지고, 시장의 소리가 다시 평온하게 울려 퍼지는 날이 온다면, 올드 사나는 그 오랜 시간의 숨결을 다시 되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이 도시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을 품으며, 오래된 골목과 시장 속에서 조용한 삶의 온기를 이어갈 것입니다.

그 시간을, 이 도시는 지금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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